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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LLIE'S JOURNAL/SOUTH AMERICA

길을 잃은것이 아니라 가야만 했던 길을 간것이었다

 

나는 몇년전 멕시코 최고의 휴양지인 칸쿤에 다녀온적이 있었다.

 

아직 이삽십대만되었을때도 여행이란 많은 곳을 봐야한다는 전투적 여행체질을 지녔던 나는 에메랄드빛 바닷가와 아름다운 칸쿤의 리조트에서 불타는 햇빛아래 살을 내놓고 누워 유유자적한다는 것은 체질상 맞지않았다. 하지만 많은 분들은 깨끗하고 한적한 캐리비안의 리조트에서 칵테일을 한잔 하며 석양을 바라보고싶은 로망이 있다.

 

 

대부분 칸쿤에 대한 이야기라 함은 멋지고 럭셔리한 리조트에서 해상스포츠를 즐긴 이야기를 기대하기 쉽지만 나는 칸쿤에 대한 이야기를 GPS 로 시작해볼까한다.

 

GPS.. Global Positioning System 의 줄임말로 이 기계가 있으면 위성과 연결되어 내가 어디쯤 있는지 알려주는 장치다. 예전엔 Garmin 브랜드들을 많이 썼지만 이젠 폰만 있으면 구글맵으로 쉽고 편하게 이용할 수 있다.

 

대부분 칸쿤을 가게되면 공항에서 호텔까지 셔틀을 타고 리조트에만 머물러있고 거의 대부분이 렌트를 하지않지만 우리는 어째서인지 렌트를 하기로 했다. 게다가 미국서 멕시코에서도 사용할 수 있는 새 GPS 를 구입하였다. 아마도 아이들때문에 잘 걷지않을것이며 리조트가 심심하다면 다른 멕시코 유적지들을 마음껏 돌아보기 위해서였던듯하다.

 

공항엔 각종 호객행위를 하는 사람들로 북적거리며 우리를 불러댔지만 우린 렌터카회사에서 직원이 직접 나와 렌터카센터로 이동을 했다. 렌터카 센터에 들어서면서부터 렌트카직원들은 멕시코경찰의 악명높음을 이야기하며 신호위반이나 속도위반에 대해 주의를 준다. 멕시코사람이 직접 자기네 나라 경찰을 조심하라니 이런 이야기를 대놓고 했다.

 

 

우리의 예상과는 달리 칸쿤에서 차를 쓸 일은 거의 없었다. 다만 세번째날 치친니짜를 보러가기위해 우리는 새벽부터 드디어 차를 몰아 칸쿤 시외로 나갔다.

칸쿤에서 치친니짜가 있는 곳까지는 구글맵상 불과 2시간반밖에 걸리지 않았지만 칸쿤 시내로 들어서자 길이 복잡하고 차도 많고 낯선 멕시코 도로와 스페인어는 GPS 가 있음에도 매번 들어가야할 곳을 지나치게 만들었다. 출발부터 좀 헤매다 겨우 치친니짜로 향하는 유료고속도로를 타게 되었다. 타고보니 이 고속도로는 관광객 전용으로 길가엔 아무 도시도, 가게도, 식당도, 나가는 도로마저없다는 것을, 그저 정글을 통과한다는 것을 알게되었다.

 

칸쿤에서 치친니짜까지 편도 300 페소(약 25불, 3만원)의 거금의 톨비를 지불해야 한다. 물론 비싸서 차도 거의 없고 로컬 사람들은 다른 국도를 이용한다고 했다. 배가 좀 고팠지만 가져온 과자로 대강 때우고 가까스로 치친니짜에 도착하게 되었다.

 

 

 

치친니짜를 보고 다시 호텔로 돌아갈 시간이 되었는데 하늘은 컴컴하게 먹구름이 몰려왔다.

 

우리는 평소처럼 다시 GPS 를 켜고 호텔로 돌아가는 길로 세팅하고 가려는데 몇분후 갑자기 GPS 는 왔던 길을 돌아가라고 한다.

 

우리가 잘못 본게 아닌데 하면서도 길을 모르니 하는수없었다. GPS 가 가라는대로 차를 돌렸다. 그런데 갑자기 GPS 는 이상한 골목길을 들어가기 시작했다.

 

동네가 정말 찟어지게 가난했다. 21 세기에 이렇게 사는 사람들도 있구나하며 나는 창가로 펼쳐지는 그닥 아름답지않은 예상치않았던 모습에 인상이 찌뿌려졌다.

 

 

큰길로 다시 나와 차를 잠시 세운후 이왕 이렇게 된 김에 우린 가는길에 스페인 사람들이 만든 도시인 발라돌리드를 경유해 가기로 하고 다시 GPS 경로를 바꾸었다.

사실 지나고보면 이때 바로 칸쿤으로 갔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왜 갑자기 이때 발라돌리드를 가자는 마음이 들었을까. GPS 가라는대로 가긴하는데 차가 지나가는 도로변의 집들이나 사람들이 올때와는 완전히 달랐다.

 

 

보아하니 로컬사람들이 이용하는 국도로 들어선듯했다. 아까 유료도로보다 차도 제법 있고 고물차들이 많았다.

국도는 불과 일차선인데다 속도도 80킬로정도밖에 내지못하고 게다가 마을에 들어서면 울퉁불퉁한 것이 설치되어 완전히 속도를 줄여야했다.

 

속도가 줄때마다 나는 창밖으로 눈길이 갔다. 사실 눈길을 돌리고싶지 않아도 차가 너무 천천히 가기때문에 어쩔수없이 볼 수 밖에 없었다.

다 찌그려져 가는 집.. 옷도 입는둥 마는둥 한 시커멓고 작달막한 사람들이 모두 밖에 나와 하염없이 할일도 없이 지나가는 사람들을 바라보는 모습..아마도 전기가 들어오지 않거나 집안이 너무 더워서 그런것이리라.

 

 

게다가 버려진 개들이 어찌나 많던지.. 그냥 길 한가운데 앉아버리거나 길가에 차에 치여서 죽은 개들의 시체..그 개들이 마치 멕시코 사람들의 현실처럼 보였다.

 

 

 

 

사실 멕시코가 못산다고 생각은 했지만 이정도까지일것이라곤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치친니짜에서 발라돌리드를 가는 국도는 정말 빨리 벗어나고싶었다.

 

 

천둥번개를 동반한 비까지 내리자 가까스로 발라돌리드에 도착한 우리는 비때문에 도시를 구경할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이렇게 아름다운 성당을 앞에 두고도 그냥 떠나고싶었다. 그저 이 지저분한 도시를 벗어나 빨리 깨끗한 칸쿤의 호텔로 돌아가고싶은 생각만 들었다.

 

 

발라돌리드에서 이제 칸쿤호텔로 가는 길을 GPS로 찍으니 갑자기 또 GPS는 다시 우리가 왔던 길을 돌아가라 나온다. 뒷골이 땡기고 피가 거꾸로 쏟기는것같았다.

하지만..지도도 없고 아이폰을 쓸수도 없으니 가라는대로 운전을 시작했다. 이건 선택상황이 아니라 그냥 GPS 가 하라는 대로 할 수 밖에 없었다. 그랬더니 얼마후 GPS는 아직 닦이지도 않은 비포장도로로 가라 하지않나, 일방통행 도로를 반대로 가라 하지 않나.. 고장이 난듯했다. 다시 어느알수 없는 외딴 골목까지 우리를 이동시켜 놓았다.

 

아이들도 이제야 눈치를 채고 우리가 길을 잃은것인가 물어본다. 길을 잃었다하면 아이들이 패닉이 될것같아 GPS를 잘못 찍었다하고 둘러대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남편은 운전면허증까지 호텔에 두고 운전을 한 상태였다. 남편과 나는 여행 사상 최악의 상황이란걸 서로 알고있었지만 말하지 않았다.

 

이젠 본능에 의지할 수 밖에 없었다. GPS 에 의해 퇴화된 우리의 길찾기 능력을 되살려야했다.

 

어디가 어딘지는 모르나 이젠 GPS 가 아닌 도로의 팻말을 살피게되었다. 도로의 팻말들은 울창한 나무에 가려 잘 보이지도 않았다. 어느정도 가다보니 칸쿤방향이란 팻말이 겨우 하나 보이기 시작했다.

 

 

 

십여분의 드라이빙.. 이건 미국의 가장 오지중의 오지라는 데쓰밸리 국립공원을 운전하는 것보다 더 오지속에 떨어진듯했다. 차도 별로 없는 정글속을 운전하는데다 속도가 늦춰질때마다 보이는 더럽고 초라한 멕시칸 동네는 미국의 어느 빈민촌과도 비교할 수 없을만큼 가난하고 헐벗었다.

그러던 얼마후 파란화면으로 먹통이 된 GPS에 드디어 우리가 가고있는 도로가 잡혔고 알고보니 우리가 로컬들이 다니는 국도를 달리고 있다는 것을 알게되었다. 계산된 도착시간은 장장 세시간이 더 넘게 걸렸다.

창밖은 여전히 정글숲이 아니면 다 찌그려져가는 초가집들과 감옥..유리창문도 없는 집들.. 전기가 안 들어오니 밖에 나와있는 사람들 지나쳐갔다.

 

 

 

어느정도 칸쿤으로 돌아가는 길에 들어섰다는 안도의 마음이 들었지만 한편으로 이렇게 길을 잃고 잘못 들어와 두세시간을 더 돌아가는 상황, 머리가 터질듯한 상황, 혹 만약의 사태에 대한 두려움이 업습하는 이 상황에 어쩌다 이 길로 들어섰나 아무리 물어보고 되집어봐도 이해할수가 없었다.

 

그러면서 이상하게도 나는 내가 마치 이 길로 들어섰어야만 했던 어떤 운명같은 것이 느껴졌다.

 

어서 벗어나고싶었던 풍경들이 지나치면 지나칠수록, 눈에 들어오면 들어올수록 이 길을 내가 봤어야만 했다는 생각들..

 

보지않으면 결코 이해할수도, 알수도 없었을 멕시코 사람들의 실제 사는 모습.. 어쩌면 내가 칸쿤에서 본 것을 멕시코의 본모습이라 떠벌리고 다녔을지도 몰랐다.

 

 

 

 

그제야 카메라를 들어올렸다. 아름다운 광경은 아니지만 나의 편견에, 나의 좁은 시야를 밝혀준 이 풍경을 기억하고싶었다.

그리고 이제 그 풍경이 지긋지긋하고 더러운 모습이 아닌, 또다른 시야로 실제로 살아가는 그들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음을 깨닫게되었다.

 

 

 

 

마음이 가라앉아서일까. 배가 고픈것이 기억이 났다.

 

오후 3시가 다 되어가는 시간에 아침부터 한끼도 못 먹어 배가 고파 길가의 한 노점상에서 바나나와 물 몇병을 샀다. 처음 이 길로 들어설때만해도 차를 세운다는건 상상할 수 도 없는 일.. 하지만 배가 고팠다. 그리고 왠지 꼭 닫아둔 창문을 열고싶었다.

상점앞엔 더러운 개들 몇마리가 몸의 벼룩을 잡고 파리가 윙윙거렸다. 길거리 노점상의 할머니는 우리같은 사람을 첨 보는지 신기한지 보고 또 봤다.

물을 사고 남은 잔돈을 다 주고싶었지만 일 페소까지 정확하게 건네준다. 주길래 다 받았다. 겉은 노란데 바나나가 너무 떮어 입에 댈 수조차 없어 다시 다른 좀 더 익은 바나나를 사왔다. 이 사람들은 이렇게 떫은 바나나를 먹는단 말인가.

 

 

 

 

 

다시 출발했다. 이젠 속도가 늦추어져도 처음처럼 지긋지긋한 마음이 아닌, 조금은 정겨운 마음으로 그들을 바라보게되었다.

 

좋은 옷을 걸치지 않고 제대로 된 신발을 신지 않아도 엄마품에 꼭 안겨있는 아이의 모습이 우리 아이들과 다르지 않고 길거리에서 노는 아이들 모습이 우리 아이들과 그리 다르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게다가 이젠 지나가는 풍경을 자세히 보니 이제 좋은 것도 보이기 시작했다. 멕시코사람들은 집은 참 화려하게 칠해놓았다. 아무리 누추한 집이라도 이렇게 화려한 색으로 색칠해놓으니 밝아보였다. 아마도 사람들의 마음은 다 똑같은가보다.

 

 

 

 

 

칸쿤에 가까워질수록 주변의 집은 점점 더 나아지고 커지고 깨끗해진다. 그토록 벗어나고싶었던 동네를 벗어났지만 여전히 마음은 불편했다.

세계 최강대국이란 미국 바로 옆에 있는 나라의 사람들이 이렇게 살고 있는 것이 그들의 문제인지, 그들의 나라의 문제인지 그 답답함은 호텔로 돌아오고 미국으로 돌아와도 지워지지않았다.

 

 

 

왜 그 길로 들어오게 된것인가. 어쩌다 그 길로 들어섰던 것일까. 구글맵을 열어보지만 내가 왔던 길이 어딘지도 모르겠다. 꿈을 꾼것일까? 마치 홀린듯하다.

 

하지만 그제야 깨닫게 된다.

그것이 실수였든, 운명이었든 내가 길을 잃은 것이 아니라 가야만 했던 길을 갔다는 것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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