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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LLIE'S JOURNAL/CANADA

나는 기억한다(Je Me Souviens) , 라 시타델(La Citadelle)​ - 퀘벡 2편

퀘벡의 아름다운 거리들을 구경한 후에 향한곳은 퀘벡의 별모양 요새인 라 시타델이다. 

 

 

 시타델로 가기 위해선 대부분 생루이(영어로는 세인트 루이스) 도로를 가다 시타델 정문으로 가는 길로 가는데 우린 근처에 일하는 아저씨가 뒤쪽으로 가는 길이 있다고 해서 돌아가보기로 했다.


원래 나는 대인(大人)이라 큰 길, 쭉 뻗은 길을 선호하는데 어쩌다 뒷길, 즉 산길을 택해 올라가본다. 동네 아저씨가 가르쳐 준 길을 조금은 의심하는 마음으로 올라가보는데 역시 여기 사는 사람이 가르쳐 준 길이라 그런지 전망이 더 좋았다. 

 

 

 

뒤쪽길로 가니 아름다운 집들도 보였다. 아마도 이런 좋은 전망의 집이라 무척 비쌀것같은 세속적인 마음이 들었다. 

 

언덕을 넘어 가다보니 이 길은 우리가 시타델의 외벽 성벽위를 걷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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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멀리 입구가 보이는데 마치 모형같이 생긴 보초들이 꼼짝도 하지않고 서 있었다. 


들어가는 입구에 왕관을 쓴 비버가 보이고 "Je Me Souviens" 이라고 써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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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요새는 현재도 군대가 쓰고 있는 곳이라 혼자 막 돌아다니면 안된다. 입장료를 내면 불어 또는 영어 가이드가 나와서 사람들을 데리고 투어를 시작한다. 선택의 여지가 없으니 시타델을 구경하고 싶다면 가이드와 함께 가야하고 특히 혼자 없어지거나 하면 비상이 걸린다고 한다. 


가이드가 Je Me Souviens 란 말은 설명해주는데 이는 나는 기억한다 라는 말이라고 한다. 우리가 프랑스령이었다는 것을 기억하라는 의미도 있을수도 있고 또 한편 프랑스령이던 이곳이 영국으로 넘어가게 되면서 느낀 수치심이나 뭐 그런것을 기억하라는 말하는것 같았다. 아마도 이젠 그런 것을 당하지 않도록 후손들이 잘 기억하고 힘을 키워라 그런뜻으로 해석할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 

 

비버모양은 이곳이 옛날부터 비버 모피를 유럽에 수출하던 곳이며 그 비버털로 이런 어마어마한 경제력을 쥐게된거니까 아마도 비버에게 감사의 표시를 한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비버가 왕관까지 쓰고있는데 원래는 없었지만 세계대전때 이곳에서 많은 부대와 장병이 보내졌고 훌륭히 싸웠다고 하여 나중에 씌여진 왕관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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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내부를 구경하기 전에 외부에 대해 설명하자면 시타델은 별모양으로 생겼다. 그런데 왜 별 모양일까? 만들기도 힘들것같은데 말이다.  

 

가이드의 설명에 의하면 별모양으로 만들면 대포를 쏠때나 총을 쏠때 블라인드 사이트가 없다고 한다. 밖에서 쳐들어오는 적들도 모두 볼 수 있고 아군이 대포를 쏠때도 아군에게 쏘지않는다고 하니 참 전략적인 모양이었다.

 

다른 빌딩은 오래전 탄약고로 썼다고 하는데 이곳또한 매우 과학적으로 설계되었다고 한다. 그 시절 불만 붙으면 터져버리는 탄약때문에 터지기라도 하면 온 주변 건물이 박살이 나는데 이 건물은 터지면 지붕이 폭삭 가라앉게 건설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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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벽으로 올라가 전망을 구경해 보았다.


사실 이 요새는 프랑스군이 몬트리올이 영국에 함락되었다는 말에 이곳으로 곧 쳐들어 온다는 소문에 짓기 시작했는데 결국 다 짓는데 30년이나 걸렸다고 한다.

 

게다가 한번도 침략을 받지 않았다니 열심히 지은 의미가 없는건 아닐까 하는 생각에 "허새요세"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 요새가 있어서 침략을 안 한건지 아니면 이 요새를 짓다 프랑스군이 영국에 항복해버린건 아닌지 모를 일이다.


재미있는 것은 이 요새가 한번도 침략을 받지 않았지만 대포는 쏘았다고 하는데 그 목적은 겨울에 강이 꽁꽁 얼면 배가 다니게 하기 위해 얼음을 깨려고 포를 쏘았다고 한다. 그런데 몇번은 얼음이 너무 두꺼워 포탄이 얼음을 굴러 굴러 맞은편에 보이는 도시의 집안으로 굴러들어가기도 했다고 한다. 들을때는 심각했지만 생각해보니 정말 재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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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또한 시계로 쓰였다는 곳은 중간의 볼같이 생긴것이 한시간마다 천천히 내려와 종을 치고 다시 올라가 강에서 일하는 사람들이나 강 건너편까지도 몇시인지 알려주었다고 한다.

 

이제 나오니 근위대 교환식을 하는 광장이 있는데 여름에는 아침 10시에 퍼레이드를 볼 수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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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군대에서 쓰는 감옥에 들어가보았는데 이곳은 엄청난 죄를 지은 군인들이 있던 곳은 아니고 늦잠자거나 행동이 불량한 군인들의 정신개조(?) 목적으로 쓰던 훈방용 감옥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갑자기 켈리가 화장실 가고싶다고 소리치니 가이드가 감옥안에 화장실이 있다고 한다. 우리보고 감옥으로 들어가라고 하는데 우리 둘은 완전 쫄아서 들어가보니 생각과 달리 아주 깨끗한 화장실 변기가 있었다. 하지만 매우 좁고 육중한 벽때문에 쇼생크 탈출은 완전 불가능하게 보였다. 

 

사실 나가려는데 갑자기 공포가 밀려왔다. 문이 안 열릴까봐..이대로 이안에 켈리랑 둘이서 갇히는 줄 알았다. 
1분여만의 감옥체험.우리둘은 후다닥 밖으로 나왔다. 

 

자유의 공기가 매우 감미로웠다.

 

 

 

 

 

 

시타델 투어를 마치면서 Je Me Souviens; 주미수비엥, 나는 기억한다란 말이 인상깊었다. 

 

나는 어릴때 학교에서 역사를 가르칠때 그저 대학에 가기위한 과목으로 역사를 이해하였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이를 먹을수록 내가 느끼는 역사는 수업시간 배운 수학이나 물리보다 어쩌면 더 큰 중요한 의미를 우리에게 주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희안하게도 역사는 되풀이되며 비슷한 사건들이 현재에도 일어나고 있다. 

 

나는 한국인으로 우리 나라가 약하고 평탄하지않았고 강대국들 사이에서 이리 저리 치이며 침략을 받으면서도 굳건히 나라를 이어온 역사들을 배웠다.  그런 시대를 거처 지금은 세계의 아주 중요한 위치에 오르게 되었고  어쩌면 한국인이 한반도에 자리를 차지하고 살아온 그 세월속에서 가장 강대하고 아름다운 나라를 만들었다고 할 수 있다. 

 

퀘벡의 시타델에서 배운 "나는 기억한다" 란 말에서 나는 혼돈스러웠던 과거와 지금의 영광을 한국사람들이 기억하길, 또한 언제든 대국적인 마인드가 없이는 또 과거에 겪었던 고통을 다시 겪을 수 있음을 기억하길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