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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LLIE'S MEMORIES

버킷리스트(feat. 큐브호텔)

버킷 리스트.

 

버킷 리스트는 죽기 전에 꼭 해 보고 싶은 일과 보고 싶은 것들을 적은 목록으로 중세시대 교수형을 집행할때 발을 딛고 올라가는 양동이를 걷어차는 의미인 Kick the Bucket 에서 유래된 말이라고 한다. 

 

 나도 따로 리스트를 종이에 조목조목 적어놓은것은 아니지만 살면서 해보고싶은 리스트와 여행을 하면 꼭 해보고싶은 리스트 들이 있다.  버킷리스트에 든것들은 어떤 것들은 아주 쉬워보이지만 실천하기 매우 난감한것들도 있고 한편 몇년의 준비과정이 있어야 실현가능한것들도 있다.

 

나의 우스운 버킷리스트중에 하나라면 비가 부슬부슬 오는날 비에 흠뻑 젖어보고싶은 그런 리스트도 있는데 사실 비는 아무대서나 다 내리지만 실제로 비가 오면 비를 피해 후다닥 뛰거나 우산을 쓸때가 많다. 

 

아이슬란드 여행에서는 흠뻑 젖을 기회가 많았는데도 나는 우비에 모자까지 쓰고 비를 피하기도 했다. 옷을 버릴까 하는 걱정도 있지만 사람들 보는대서 비를 흠뻑 맞고 있으면 미친 사람처럼 보이지않을까 하는 생각이 버킷리스트보다 먼저 떠오르기때문일지도 모른다.

 

버킷리스트라고 다 이룰수 있는것만은 아닌것이 "오른쪽운전석에서 운전해보기" 같은 버킷리스트는 영국에 갔을때 충분히 해볼 수 있었지만 도착해 자동차와 거리를 보니 너무 위험해보여 포기하기도 했다. 

 

 

 

 

최근 여행을 하면서 만들어진 버킷리스트중 하나가 나의 스무살시절 유럽배낭여행때 해보지못한 "도미토리룸에서 숙박해보기"가 있다.  

 

내 여행스타일이 잠은 편한곳에서 자는 주의라 그전까지 호텔을 정할때 호스텔이나 도미토리같은곳은 전혀 생각해보지않았다. 그런데 여행을 하다보니 나이가 들고보니 20대에 못해봣던 것에 대한 아쉬움이랄까 이상하게도 다음여행때는 도미토리에 자봐야겠다 하는 생각이 들곤했다. 

 

마침 일본여행을 계획하다 호텔을 검색하다보니 "캡슐호텔/큐브호텔" 이란것이 보였다. 최근 미디어에도 많이 소개되고 있고 혼자 여행하거나 잠만 잘곳이 필요한 여행객, 또는 공항같은곳에는 늦게 도착하고 다음날 일찍 커넥팅 비행기를 탈때 유용하여 이용하는 사람들이 점점 늘고 있다고한다. 

 

(참고 : 7 Coolest Capsule Hotels for Your Next Stay in Japan)

 

 

형식은 도미토리같은곳인데 현대식으로 샤워시설등이 깔끔하고 잠도 삐걱거리는 이층침대가 아닌 큐브통같은곳에 들어가서 잔다고 하니 매우 쿨해보였다. 아이들에게 사진을 보여주니 쿨하다고 난리다. 

 

 

벌집같이 생긴 큐브에서 잠을 잔다는것은 어떤 것일까 매우 궁금했던 나는 버킷리스트도 이룰겸 일본의 동경과 교토, 오사카에 나인아워(Nine Hours)란 큐브호텔체인을 알게되었고 동경에서 교토로 신칸센을 이용할 예정이라 동경역에 가까운 여자전용 나인아워호텔이 있다는 것을 알게되었다. 

 

요즘 유행하는 인스타에서처럼 매우 쿨한 사진들과 신기해보이는 큐브, 그리고 이전에 수없이 많이 머물렀던 호텔과는 다른 개념의 숙박을 할 수 있다는 기대감에 나는 주저없이 예약버튼을 눌렀다. 

 

(사진 : 나인 아워 신주쿠)

 

동경처럼 숙박비가 비싼데 인당 50불도 되지않는 큐브에 할인까지 겹치니 거의 인당 30불이라는 저렴한 가격에 예약까지 하니 더 기대가 되었다. 

 

동경의 나인아워 킨다 호텔은 동경역 다음인 킨다역 바로 앞에 위치했고 가는 길목에 맛집들과 편의시설등이 줄지어있었다. 저녁시간이 되자 어디선가 꼬치굽는 냄새까지 나서 배마저 고프게했다. 

 

나인아워에 도착하니 생각보다는 달랐다. 마치 두 건물사이의 공간에 한 건물을 만들어 좁아보였고 다른 나인아워호텔처럼 창문이나 테라스도 없었고 1층에는 보관함, 2층에는 샤워시설, 3층부터 5층까지는 큐브가 있어 잠을 잘 수 있는 공간이었다. 

 

 (사진 : 나인 아워 칸다)

 

 

큐브는 2층으로 벌집모양처럼 되어있고 창문도 없는, 정말 잠만 자는 공간이었다. 

 

아이들은 신나서 큐브속으로 들어가보고 비디오도 찍었는데 나는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여행 첫날이라 그런가보다 하고 동경에 있는 친구와 저녁을 먹고 다시 호텔로 와서 짐도 풀고 샤워도 하였다. 시설은 참 깨끗하고 군더기 하나 없을 정도로 잘 정리되어있었다. 

 

 

 

 (사진 : 나인 아워 칸다)

 

 

 

 

 (사진 : 나인 아워 칸다)

 

 

그런데 큐브로 들어가니 아이들과는 달리 나는 매우 심장이 뛰고 답답하였다. 여행할때 술을 마셔도 비행기에서 잠을 잘 못 자는 나는 여행지에 도착한 날은 푹 쉬어야하는 체력이라 보통은 침대에 눕자마자 골아떨어지는데 이날만은 목이 마르고 에어콘이 나오는데도 더워서 가져온 간이 팬마저 틀어야했다. 

 

30분정도 누워있는대도 정신은 더욱 말똥해지고 심장이 벌렁거려 잠을 이룰수 없었다. 윗층에 누은 아이들의 사각거리는 이불움직임마저 천둥소리처럼 크게 들렸다. 호텔옆을 지나가는 지하철 소리, 거리에서 술마시고 웃는 사람들의 소리들마저 나에게는 바로 옆에서 나는 소리처럼 들려 잠을 이룰수 없었다. 

 

아이들은 이미 골아떨어져있어 나는 결국 아래층으로 혼자 내려왔다. 답답하여 결국 밖으로 나와 좀 바람을 쐬니 좀 괜찮다가도 다시 들어가면 목이 마르고 뒷골이 땡기는 현상이 이어졌다. 

 

 

 

누웠다 내려갔다 밖으로 나갔다를 되풀이하다 그제서야 나는 알게되었다. 내가 폐소공포증이 있다는 것을 말이다. 

 

결국 그날 내 여행 사상 초유의 사태가 일어났다. 자는 아이들을 깨워 비몽사몽간의 아이들을 앉혀놓고 엄마는 더이상 이곳에 있지못하겠다 이유를 설명하고 짐을 싸들고 동경의 친구의 집으로 피난(?) 을 하게된 것이다. 

 

50불이나되는 택시비를 지불하고 도착한 친구집에선 눕자마자 골아떨어졌다. 

 

다음날 아침 깨어난 나는 전날 나의 첫 큐브호텔 경험에 나를 돌아보게되었다.

 

폐소공포증이라면 비행기나 엘리베이터 같은것도 못 탄다던데 난 전혀 그런것도 없는데 왜 유독 그 큐브호텔에서 그랬을까? 그 죽을것같은 그 느낌이 신문기사나 드라마에서 보던 그 폐소공포증의 증상이란 말인가? 그저 여행첫날이라 그런것은 아니었을까? 친구와 마신 아주 센 커피때문은 아니었을까? 내가 자는 아이들마저 깨워 호텔을 나올수밖에없었던것일까? 

 

그러다보니 갑자기 생각난 것이 하나 있었다. 

 

몇년전 칸쿤에 갔을때 잠수함을 탔다가 극심한 멀미와 숨막힐듯한 경험을 한적이 있었다. 그때는 사실 잠수함멀미라고 생각했지만 그후로 잠수함은 절대 타지않게된것이 어쩌면 그때부터 내가 일명 폐소공포증이란것이 있었기때문이란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군함이나 지하동굴같은곳을 들어가도 비슷한 느낌이었다는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자 나는 그제야 내가 몰랐던 나의 새로운 모습을 발견하게되었다. 

 

물론 사람마다 약하고 심하고 강도의 차이도 있을것이고 폐쇄된 공간에 들어간다고 다 극복하는 방법도 다를것이다. 폐쇄된 공간이라해도 창문이 있거나 움직일 공간이 있으면 없을수도 있고 또 잠시 있다가 나간다 생각하면 금방 극복하거나 다른 생각을 하거나 해서 애초에 느낌마저 없을수도 있을것이다. 

 

버킷리스트 하나 하려다 송장될뻔했다고 지인들에게 이 이야기를 하면 다들 웃으며 우리가 이젠 젊은이들처럼 큐브호텔이나 먼가 도전적인 여행을 할 나이가 아니라고 웃어 넘긴다. 나 마저도 지금은 이렇게 웃으며 이야기하지만 정말 그때는 혼란스럽고 고통스러웠다. 

 

나는 결국 교토와 오사카에서 지낼 큐브호텔 예약을 모두 취소하고 피해가기로 결정했다. 도미토리나 호스텔은 나와 맞지않다는걸 깨달은것이 바로 버킷리스트를 이룬것일것이다. 

 

예전엔 막연히 버킷리스트를 해보면 다 좋을것이라고 생각들었다.

 

하지만 이제야 버킷리스트를 이루고자 노력하는 과정과 이루었을때 좋은것도 있고 좋지않은것도 있다는, 그 궁금함을 알아가는것이 바로 버킷리스트를 실현해보는 뜻이란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은 머든 해봐야 안다.

 

와사비가 무슨 맛이예요 아무리 물어봐도 직접 찍어 먹어보고 콧구멍이 날아가고 눈물이 나는 경험을 해봐야 와사비맛을 알며 아이슬란드가 너무 좋아요 라고 백번을 이야기해도 한번 가서 눈으로 직접 봐야 아는것과 같다.

 

큐브호텔에 누워봐야 나와 맞는곳인지 알고 그런 경험과 도전을 통해 나에게 어떤 강한 면이 있는지 약한 면이 있는지 알게된다. 또한 그런것을 통해 더 도전해볼것인지 아니면 피해갈것인지에 대한 요령도 생기고 자신의 한계도 받아들일 수 있게 되는것같다. 

 

Kick the Buck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