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이 2020년 8월중순이니 미국에 코로나가 시작된것이 거의 6개월이 지났다.
올해초 1월중순에 스페인여행을 하고 귀국할 무렵 중국에서 바이러스가 돈다고 하였을때만해도 그동안 우리가 숱하게 들어온 중국발 바이러스의 한 종류이겠거니 싶었다.
하지만 그 바이러스로 인해 6개월간 나는 아무것도 하지못했지만 너무나 많은 일들이 주변에 일어나고 세상이 변해버렸다.
코로나초기 나는 그 말로만 듣던 "사재기"를 경험했다. 어떤 일이 닥칠지 모르는 모호함은 쌀을 사게하였고 휴지를 찾아 헤매게되었다. 마스크는 구할곳이 없어 결국 유튭에는 마스크 직접 만들기가 대유행하였다.
중국발 바이러스는 그 옆에 붙어있는 한국을 가장 먼저 쳤다. 국민들은 중국인을 입국금지해야한다 이 모든 재앙은 정부로 부터이며 정권타도를 외쳤다. 그런중 우왕좌왕하던 한국은 그래도 탁월한 의술과 의료체계로 코로나사태를 잡아가기 시작했다.
코로나 초기 중국의 입국금지를 하며 먼가 하는듯 강건너 불구경하던 미국은 시애틀에서 시작된 코로나이후 뉴욕이 유럽발 코로나로 직격탄을 맞게되었다.
마치 세계2차대전중 유럽의 전쟁을 불구경하던 미국이 진주만 공격을 받듯 아무 준비없이 터진 뉴욕코로나는 미국의 대혼란의 시작이었다.
매일 트럼프는 우리는 이겨낼수 있다 잘하고 있다 떠들어댔지만 정작 코로나 환자를 받아들인 병원은 포화상태에 검사장비마저 부족한 상황이었고 누가 코로나에 걸렸는지 알수 없고 결국 한명이 백명 그 백명이 천명 만명을 전염시키는 팬더믹에 이르게 된것이다.
다른 중국발 바이러스와 달리 이 바이러스는 어느덧 전세계 오지섬까지 번져나갔다. 모든 나라는 아마도 역사상 처음으로 국경을 닫고 매일 몇천명이나 되는 시체들을 실어날아야되는 비극에 접하게된다.
뉴저지에서는 며칠째 방치된 코로나환자들의 시체가 널싱홈에서 발견되었고 미국전역으로 병들고 나이든 환자들로부터 가난한 흑인 히스패닉층으로 걷잡을수없이 퍼져나가게되었다.
미국안에서도 물자 품귀현상이 일어나고 휴지, 세척제 등등 슈퍼에서 물건이 비는 날이 오게되었고 사람들은 물건을 구하기위해 줄을 서는 전쟁후 초유의 사태로 이어진다.
길거리에 한 가족이 나와 직장을 잃어다며 도와달라 구걸하며 사거리에 있던 풍경은 내가 접한 첫 코로나 충격이었다.
이런 와중에도 마스크를 쓰네 마네로 혼란한 미국은 트럼프 정부의 몰지각한 대응으로 더욱 더 많은 사람들이 감염되고 죽어가게되었다.
갑작스런 사태로 여행업계가 가장 큰 타격을 입게되었고 내가 운영하던 여행사를 비롯 남편의 항공사마저 대규모 감원사태가 일어났다. 아침에 나를 깨우는 남편이 자기를 밀어주던 일잘하고 성실한 디렉터가 짤렸다는 이야기를 듣고 우리도 99퍼 짤렸다고 머리싸매고 누웠다 오후에 살았다는 통보는 내 인생에 가장 업다운이 심했던 날로 기억된다.
흑인을 목졸라 숨지게한 경찰로 인해 미국엔 코로나 팬더믹 따위는 우습게 생각하는 방화와 약탈, 데모 시위사태가 일어났다. 그런 와중 미국 대통령이란 작자는 성경들고 교회앞에서 사진을 찍는 또라이짓마저 하고 나라가 하나로 뭉쳐도 헤쳐나갈까말까한 시점에 나라를 반으로 분열시키는 작태들을 하고 있었다.
그런 와중 한국에서는 대권후보이며 잘나가던 시장이 성추행으로 자살하며 어느 나라 대통령은 코로나가 걸리고 레바논에서는 몇천명이 죽는 대폭발이 일어나게되었다.
노스트라다무스가 세계종말이라고 한게 이것이 아닐까. 정말 아무것도 하지않는데도 세상은 너무 시끄럽고 어지럽고 위험했다. 매일 집안에서 컴퓨터만 보고 그전엔 하지못했던 게임을 하면서도 어느날 하루는 마치 온 몸을 두드려맞은듯 아팠다. 혹시 코로나에 걸린것인가 두려움에 떨다가 다음날 괜찮아지면 이것이 바로 말로만 듣던 코로나우울증이란것인가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자택격리 5개월째 머리끝까지 정신병이 들것같은 시점에 가족들은 비행기를 타고 여행을 가는 모험을 감행하게된다. 내 여행 사상 처음으로 비행기에서 숨쉬기가 두려움을 느꼇고 내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바이러스 보균자같은 의심을 하며 30분마다 손세척제를 바르는 해프닝을 벌였다.
여행 첨으로 6개월만에 본 자연과 바다는 내 온몸이 힐링된다는 느낌을 받았다.
여행에서 돌아온 지금 다시 자택격리에 아이들의 학교는 인터넷수업으로 시작되었다. 하지만 코로나이후 6개월에 이른 오늘은 이전엔 상상하지도 못했던 그런 세상이왔다.
그리고 이런와중 내 인생에 즐거움을 주던 좋은 동생마저 코로나합병증으로 세상을 떠나게 되었다. 나에게 왜 이런 일들이 일어나는 것인가 아직도 이해할수가 없다.
마스크를 벗고 친구들과 떠들며 아무렇지도 않게 공항과 쇼핑몰을 다니던 그런 일상이 앞으로 당분간 우리에게 주어지지 않을것이란 생각은 너무 인생이 비참하게 느껴진다. 언제 코로나에 걸릴지 모른다 혹은 내가 걸려서 내 가족들에게 전파시킬수도 있고 내 주변의 가족들 친지들 친구들이 이 병에 걸려 아프고 죽을 수 있다는 생각은 더욱 그러하다.
하지만 그 동생의 죽음으로 깨달은 것은 " 그러므로 하루하루가 소중하다" 는 것이다.
이제 앞으로 이런 세상이 올것이라는 예측이 불가능해졌다.
나에게 이런 자택격리상태가 얼마나 갈지 나에게 또 어떤 일이 일어날지 전혀 예상할수가 없다. 어쩌면 지금까지 겪었던 일보다 더 심한 고통을 얻을수도 있고 낼모레 갑자기 백신이 개발되어 모든 사람이 면역되는 그런 날이 올지도 모르겠다.
아무것도 하지않는 하루라 할지라도 매일 하루를 가치있게 쓸수 있도록 해볼 생각이다. 앞으로 다시 6개월후 어떤 세상이 와있을지는, 아니 한달후도 예측할 수 없지만 후회없는 그런 하루를 만들어가도록 할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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